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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00531 그 때에 두 사람 (마 24:36-44)
작성일 :  2020-06-24 16:39
이름 :  admin E-Mail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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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 예수님은 마지막 감람산 강화에서 개인과 역사의 확실하고 분명한 종말을 예언하셨습니다. 주님은 우주적 종말을 예언했습니다(24). 그리고 그 종말의 대비책을 비유로 교훈했습니다(25). 오늘 우리가 받은 본문은 모든 인류가 알 수 없도록 감추어져 있는 예수님의 재림시기 앞에 두 사람, 두 세계의 삶과 종말의 분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. 그때에 두 사람


  一. ‘그때에 두 사람은 공존공생하며 있다고 했습니다.

본문에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···,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···라고 했습니다. 모든 경우 직장, 노동 등 생존 전선에 함께 공존공생하고 있음을 뜻합니다. 말하자면 신자와 불신자가 섞여 사는 세상을 뜻합니다. 우리가 사는 두 세계는 공존입니다. 같은 시간, 같은 장소, 같은 조건하에서 같은 일을 하고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. 신자나 불신자가 전혀 다른 세상이 아닌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. 이렇게 세상 끝나는 그 날까지 두 세계는 공존공생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.


  二. ‘그 때에 두 사람은 분리되고 만다고 했습니다.

본문에 ···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. 우리는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 가운데서 중대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. 1. 그때 공존공생의 삶에는 끝 날이 있다는 사실입니다. 즉 유한이란 말입니다. 여기 그 때는 예수님 자신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을 가리킵니다. 이때가 바로 공존공생하는 시간이 끝나는 날입니다. 말하자면 신자와 불신자가 섞여 사는 시간이 끝난다는 것입니다. 두 사람의 세계는 그 때’, ‘그 날’, ‘그 시간을 향해 가고 있을 뿐입니다. 2. ‘그 때에 두 사람은 분리되고 만다고 했습니다. 한 사람은 데려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버려둠이 되는 상황을 말합니다. 데려감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예비 된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경우입니다. 말하자면 잠자던 무덤에서 일어나 생존자들의 변화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를 영접함을 가리킵니다(살전4:16,17). 여기 버려둠은 문이 닫혀 혼인잔치에 들어갈 기회를 놓쳐 버린 자의 경우입니다. 결국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영벌에 들어감을 뜻합니다(5:28,29). 3. 그때의 분리 기준은 예수 십자가 신앙과 불신앙이라는 뜻입니다(고전1:18). 예수님이 가르치신 확실한 진리는 믿는 자는 영생, 믿지 않는 사람은 영벌이라는 것입니다. 곧 아들(예수)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불신자에게는 멸망이라는 것입니다(3:16,18). 이것은 사실상 기독교의 요체입니다. 두 사람 중 버려둠을 당한 것은 저들이 예수를 믿지 안했다는 단 한가지 이유뿐입니다. 4. ‘그 때에 두 사람은 삶의 목적이 달랐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. 두 사람은 같은 생(), 같은 장소, 시간을 받았습니다. 같은 재능과 노동력을 부여받고 같이 일했습니다. 그러므로 밭에서 일하고 집안에서 매를 돌리는 것이 죄가 될 수 없습니다. 오히려 노동은 하나님이 주신 신성한 축복입니다. 장가가고 시집가고 집을 짓는 문화생활이 죄는 아닙니다. 문제는 그 모든 일의 목적과 의의와 내용과 방향을 어디에 두고 있었는가가 중요합니다. 인생에게 주어진 온갖 류의 생존 방식 그 자체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.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주를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밭을 갈고 메를 돌렸지만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자기를 위하여 밭을 갈고 메를 돌렸습니다. 실로 신자들은 몸은 밭에 있고 손은 맷돌을 붙잡고 있어도 그 모든 목적과 내용은 주를 위함에 있습니다. 같은 일에 함께 하면서도 다른 한편의 사람은 정반대의 목적을 갖고 살았습니다. 바로 이것이 내용적 차별의 삶입니다. 목적적 다른 삶의 모습니다. 5. ‘그때에 두 사람의 결국은 불가항력적인 것이었습니다. 우리 성경은 데려감을 당하고’, ‘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. 두 사람이 똑같이 당하는 그때의 사건은 전혀 두 사람 자신들의 주장함이 아니라도 했습니다. 그 때 두 사람은 전혀 피동적으로 당하고만다고 했습니다. 어쩔 수 없고 피할 수 없는, 그리고 지연시킬 수도 없는 당함입니다. 그 때 역사의 현장에 나타나신 주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. 만유의 주요 대주재이십니다. 자신의 약속대로 타작마당을 정결케 하실 분입니다.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분이기 때문입니다(3:12).

 

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!

  타락한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불확실하고 불안합니다. 그럼에도 예수님의 말씀은 과거에도 확실하고, 현재도, 미래에도 확실합니다. 예수님은 개인의 미래인 종말과 역사의 미래인 우주의 종말에 대해서 너무나도 확고부동한 예언을 했습니다. 그 이유는 자신이 영존하고 자신이 전지하고 자신이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. 자신이 하신 말과 행동에 대하여 자신이 확실히 책임질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. 죄로 인하여 저주 받은 전 자연계에 이변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. 교회 안에 거짓 그리스도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. 이러한 악조건하에서도 세계적인 복음운동의 종말 선교가 땅 끝까지 전개될 것이라고 했습니다. 세상에 자리 잡고 있는 교회는 그때에 두 사람중에 속해 있습니다. 개인과 역사는 멈추지 않고 그날 그 때를 향하여 진행해가고 있습니다. 우리를 향한 주님의 부탁은 깨어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(24:42,43).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. 이 삶이 곧 독경, 주일성수, 온전한 십일조, 생활에서의 예배체험, 힘쓰는 기도, 전도와 찬미와 감사생활로 펼쳐가는 기쁨의 삶입니다. 현재보다 1,000배나 더하는 축복의 미래를 가져오는 삶의 비결입니다. -아멘-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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